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◎ 사직단(社稷壇)

※ 수원부를 처음 옮겼을 때 옛 사직단을 팔달산(八達山) 서쪽

기슭에 설치하였다. 성 쌓기에 이르러 돌 뜨는 일이 가까워지고

또 울타리와 제단도 옮겨 새로 설치하여 이미 많이 기울어졌다.

그래서 을묘년(1795) 가을에 다시 새 터를 성 북쪽 2리쯤인

광교산(光敎山) 서쪽 기슭에 자리를 잡아 다시 세울 것을, 장계를 올려 청하였다. 길일을 택하여 단을 쌓았는데 단의 높이가 3척,

동서의 길이가 10척, 남북의 너비가 8척으로 위쪽은 네모난 벽돌을 깔고 단 아래쪽 사면에는 대를 1층 쌓았다.

대 아래 네 뜰엔 4면의 담을 두르고 각기 홍살로 작은 문을 설치하였다.

동문 바깥 조금 떨어진 곳에 북쪽으로 1칸 신실(神室)을 지어 사직의 위판(位版)을 넣어놓고 항상 자물쇠로 잠궈 놓았다.

남문 바깥 조금 떨어진 곳 서쪽으로 약간 아래쪽에 또 전사청(典祀廳) 3칸을 세웠는데, 거기의 온돌 1칸이 제사지내는 관리가 재계하는 곳이다. (華成成役義軌)

※ 사직단은 현재 국립 보훈원 안에 있는 산 꼭대기에 있다.

예전엔 가뭄이 심하게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며

가을철에도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.

기우제를 지냈던곳은 이곳 말고도 용지와 광교산 문암골에도 있다.

(수원지명총람 - 수원시.수원문화원)

※ 사직단에 실제로 들어간 경비 (華成成役義軌)

자재비 233냥 2전 8푼

노 임 126냥 4전 1푼

운 임 38냥 5전

합 계 398냥 1전 9푼